형식 내용에 구애없이 자유로운 글들을 주고 받는 게시판입니다.
  • 돌아가기
  • 아래로
  • 위로
  • 목록
  • 댓글

그 바닷가의 추억 [펀글]

낚시미끼 3299

0

3

그 바닷가의 추억

 


오래 전에 남해안 어느 바닷가에서 일어났던 내 젊은 날의 일이 아련한 기억 속에 살아난다.


그 해 한여름의 태양이 이글거릴 때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방랑벽이 도져서 목적지도 없이
배낭 속에 텐트와 간단한 취사도구를 챙겨 홀로 발길 닿는 대로 방랑을 시작했다.

 

어느 문둥이 시인이 노래했듯이 가도 가도 황톳길, 숨막히는 산길을 걸어 산마루에 올라서니
아! 이게 무슨 별천지인가......
햇빛에 반사되는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고 점점이 떠있는 섬들, 흰 궤적을 늘어뜨리고
지나가는 배들 그리고 꼬불꼬불한 해안선은 감동 그 자체였다.

 

단숨에 바닷가로 내달렸다. 조그만 포구엔 노 젓는 배 몇 척이 정박해 있고 근처엔 게딱지처럼 옹기종기
눌러앉은 집들이 예닐곱 채 있었다. 리아스식 해안 저편엔 긴 모래사장이 보였다. 텐트를 치고 하룻밤 지내기에
 좋아 보여 무작정 그 쪽으로 걸었다. 이미 해는 서산에 가까웠고 길손의 그림자는 길게 물가에 드리워지고 있었다.

 

발을 물에 담근 채 어슬렁어슬렁 몇 구비 해안을 돌아 해수욕장처럼 생긴 너무나 깨끗한 그 모래사장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순간 나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의심했다.

 


이렇게 외딴 모래사장에 닭이 한 마리 왔다갔다하고 있는 게 아닌가. 바다오리나 갈매기가 아닌 닭이......

이건 분명 근처에 누가 산다는 이야기다. 신기해서 닭을 좇고 있는데 이번엔 내 귀를 의심하는 일이 생겼다.
어디선가 실낱같은 목소리로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하는 클라멘타인 노래 소리가 들렸다.
닭이 한 구비 돌아 노래 소리 나는 쪽으로 달아났고 나는 무작정 그 쪽으로 향했다.

 

한 구비 돌아서니 아니나 다를까 초막 오두막이 하나 있었고 그 집 앞 모래사장엔 조그만 꼬마 하나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여섯 살쯤 되어 보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낚싯줄을 물 속에 던져놓고 뭔가를 잡고 있었다.
 옆엔 찌그러진 주전자가 하나 있는데 들여다보니 바닷물을 반쯤 채워놓았는데 안에는 꼬시래기 대여섯 마리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네가 낚았니?" 하고 물었으나 말이 없었다. 남루한 팬티만 하나 걸치고 위에는 아무 것도 입지 않고
햇볕에 그을려 온 몸이 새까만데 눈은 왜 그리 크고 맑은지...."네가 아까 노래 불렀니?" 물어도 대답이 없다.
마치 남태평양의 원주민들이 문명세계에서 온 서양인들을 빠빠라기라고 부르며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처럼
그 꼬마는 나를 바라보고 뭔가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낚시하는 채비를 자세히 보았다. 미끼는 물밑에 기어다니는 게고동을 잡아
껍질을 살짝 깨어서 알맹이가 기어 나오면 미끼로 쓰고 있었다. 낚싯줄은 나무 막대에 감았는데 길이가 약 10미터쯤
되어 보였고 낡아서 때묻은 줄의 굵기는 족히 10호는 되어 보였다. 바늘은 상당히 큰 것을 하나 달아 놓았고 납 봉돌은
있을 리 없어 잘록하게 장구처럼 생긴 돌멩이 하나를 줄에 묶어 팔매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도 큰 꼬시래기가
올라오는데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

이것저것 물어보아도 도무지 대답이 없어 벙어리인가 생각도 했으나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 배낭을 풀어 먹을 것을
좀 끄집어냈다.


 과자와 과일을 내놓고 꼬마에게 먹으라고 건넸다. 무척 배가 고팠는지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받아먹는 게 아닌가!
예상치 못한 반응이 너무 반가웠다.
 알고 보니 이 꼬마는 배가 고파 말을 하기 싫었던 것이다.

"고기는 왜 낚니?"꼬마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반찬 하려고요."

"아까 그 노래는 누구한테 배웠어?"
"엄마한테...."

순간 닭이 우리 곁으로 와서 모래를 파며 뭔가를 주워먹고 있는데 해는 이미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지금 너 혼자 있어?"
"........."

"엄마는?"
"...... 도망갔어요"

"아빠는?"
"요 산 너머 광산에 일하러 갔어요. 나중에 올 때 쌀을 사온다고 해서 반찬 할려고 지금 꼬시래기 낚는거야..."

꼬마는 갑자기 꼬시래기 한 마리를 무딘 칼로 회를 쳐서 바닷물에 대충 씻어 반듯한 돌 위에 썰어놓고는 초막으로 달려가 된장통을 들고 나왔다.

 
"아저씨 먹어!" 하면서 새까만 고사리 손으로 꼬시래기 회 한 토막을 된장에 꾹 찍어 내 입으로 넣어주었다.
나는 눈시울이 붉어져 왔으나 노을빛 바다 덕분에 감출 수 있었다. 이제 꼬마는 경계하는 기색이 완전히 없어지고
내게 호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왜 도망갔어?"
"아빠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엄마 보고싶지 않아?"
꼬마는 대답대신 눈물을 흘렸다. 나는 달랬다.

 

그리고 우리 둘은 같이 노래를 불렀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라멘타인 늙은 애비 혼자 두고...."

이미 어둠은 깔리고 꼬마는 오막살이집에 등불을 켰다. 나는 그 옆에 텐트를 쳤다. 그리고 내가 갖고 간 쌀로 밥을 해서 둘은
남폿불 아래서 저녁밥을 먹었다.

 

밤이 이슥하여 꼬마보고 먼저 자라고 했더니 아빠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밤이 아주 깊어갈 무렵
저 쪽 해변에서 술이 고주망태가 되어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오는 인기척이 있었다. 꼬마의 아버지였다. 광산에서 돈을 좀 탔는지
 쌀을 두어 되 들고 있었다. 꼬마가 아빠에게 밥을 먹으라며 꼬시래기 회와 함께 내놓았으나 아빠는 밀쳐버리고 이내 코를 골며
뻗어버렸다. 나도 텐트로 돌아와 잠에 떨어졌다.

 

이튿날 아침 늦게까지 텐트에서 자고 있는데 바깥이 하도 시끄러워 잠을 깨고는 텐트 밖으로 나왔다.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아빠가 꼬마를 번쩍 들고는 시퍼런 바닷물 속으로 집어던지면서, "야 이놈의 자슥아! 내랑 같이 죽자! 이렇게 살아서 뭐 할래?!"하고 외치고 있었다.

 

 

꼬마는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헤엄을 쳐서 기어 나오는데 아빠는 다시 물 속으로 집어던지기를 서너 번 반복하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날렸다. 꼬르륵 가라앉는 꼬마를 뭍으로 건져내고는 아빠를 향해서 돌진했다. 밀고 당기는
멱살잡이를 해서 겨우 모래사장에 주저앉혔다.

모두들 정신이 들자 대성통곡을 했다. 에미년은 도망가고 희망이 없어 애와 함께 죽으려고 했는데 왜 살렸느냐며아빠는 흐느껴 울었다.

 
아빠는 꼬마를 부둥켜안고 한없이 울었다. 나도 울었다.

죽으면 안 된다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면서 나는 갖고 갔던 먹을 것과 취사도구 등을 몽땅 꼬마에게 주고 작별을 했다. 자꾸만 뒤돌아보며
 떠나오는데 꼬마는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멍하니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집 앞 모래사장엔 무심한 닭이 일없이 왔다갔다하는데......

 

이듬해 여름에 나는 하도 궁금하여 그곳을 다시 찾았다. 그런데 그 때는 이미 집은 허물어지고 해변엔 아무도 없었다. 닭도 없었다.


백사장은 쓸쓸하고 불안하기만 했다. 지금 어느 하늘아래 살고있을 그 소년은 아마 서른 살이 조금 넘었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 해변을 잊지 못한다.
잊을 수가 없다.

 

 

한려수도
외딴섬 토담집 별장

 

 

 

 

 

- 인터넷바다낚시 섬원주민 -

(나홀로여행님의 글입니다.)

신고공유스크랩인쇄
3
profile image

그렇게두고 떠나는 마음도 오죽할까 싶고요.

그렇게 보내놓고 원망은 이루 말도 못하지요.

제가 가르치던 한 아이가 생각나네요.

부디 삐뚤어지지는 않아야 할텐데...

11.12.26. 13:49
profile image

가슴 한편이 아련합니다.

아이에게 좀더 낳은 환경이 주어졌길 바랄뿐 입니다. 

11.12.27. 09:52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취소 댓글 등록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삭제하시겠습니까?

목록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주간 조회 수 인기글

주간 추천 수 인기글

  • 시즌오프가 되니... 이상한 지름이..
    갤럭시노트 한대 질러버렸습니다. 요넘에다가...사훅님의 나비텔 설치해서 겨우내..놀아봐야겠네요..
  • 2011 이문세붉은노을
    지난 24일 부산kbs홀에서 *2011이문세붉은노을* 콘서트를 다녀왔읍니다. 골드웜네 가족분들 얼마남지 않은 이년을 마무리 잘하시고 다가오는 저년에 대한 계획들을 알차게 꾸미세요.
  • 붙잡아 둘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분명히 사랑한다고 믿었는데 사랑한다고 말한 그 사람도 없고 사랑도 없다 사랑이 어떻게 사라지고 만 것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은 점점 멀어져 가고 사랑...
  • 사진두장-그냥~
    최남식 조회 540211.12.27.09:36
    다마스커스 회칼이라나요. 보기에 따라 아름답게도 보이는 무늬는 만드는 사람의 무수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접철방식 - 쇠를 두들겨서 접고 또접고두들기기의 반복 그런다음 연마를 하면 접힌철들의 층이 나...
  • 아론의"2011년 12월 22일_대구 골드웜 송년회 후기"
    안녕하십니까? 아론입니다. 날도 많이 춥지예!! 콧등도 조금 시렵고예~~ 지난 22일 대구에서 골드웜 송년회를 했습니다. 뭐 구미에서하면 구미 골드웜 송년회, 대구에서 하면 대구 골드웜 송년회!! 뭐 별큰 의미는 없...
  • 낚시미끼 조회 1386011.12.28.09:12
    복수와 미움 한 사나이가 말했다. "자네 낫 좀 빌려 주게." 그러자 상대방은, "빌려 줄 수 없네." 하고 거절했다. 얼마 후 이번엔 앞서 거절했던 사나이가 상대에게 찾아가, "자네 말 좀 빌려 주게." 하고 부탁했다. ...
  • 골드웜 회원이신 김선삼(용꾸렁)님의 갑작스런 부고를 접하게되어 이렇게 부고를 올립니다. http://cafe.daum.net/goldbass/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낚시미끼 조회 329911.12.26.13:14
    그 바닷가의 추억 오래 전에 남해안 어느 바닷가에서 일어났던 내 젊은 날의 일이 아련한 기억 속에 살아난다. 그 해 한여름의 태양이 이글거릴 때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방랑벽이 도져서 목적지도 없이 배낭 속에 텐...
  • 해서는 안될 말 10가지 '잘 해봐라~'하는 비꼬는 말 '난 모르겠다'는 책임없는 말 '그건 안된다'는 소극적인 말 '내가 뭘 아느냐'는 무시하는 말 '바빠서 못한다'는 핑계의 말 '잘 되어가고 있는데 뭐하러 바꾸느냐'...
  • 미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크리스마스) http://www.youtube.com/watch?v=mnk0KjWxgMA&feature=youtube_gdata_player *^^*
  • 또 하나의 선물
    안녕 하십니까. 어제 동지날 골드웜 가족 여러분 팥죽 많이 잡수셨는지요. 아침에 골드훅님으로 부터 전화가 옵니다. 팥죽 먹으러 언제 가면 되느냐구요. 집사람이 점심때 준비 할터이니 시간 맟처 오시라 합니다. 오...
  • 다음지도를 찾아보니 그렇게 찾기 어려운편이 아니네요. http://dmaps.kr/8nz2성서IC 내려가서 시내방향으로 가다가 알리앙스 네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바로 만나게 되겠네요.저는 수업마치고 8시 30분경 늑돌이님 차를...
  • 선물
    원로 조규복(부부배스) 조회 1416611.12.20.17:04
    안녕 하십니까. 매년 이맘때만 되면 선물을 보내 주시네요. 올해도 어김없이 히트 내외분께서 저히부부에게 올겨울 따뜻하게 보내라고 양가죽으로 만든 장갑을 카드와 함께 보내 주셨읍니다. 히트 부부님 고맙고 감사...
  • 동기부여를 위한 7가지 원칙 1. 성공의 꿈이 있어야 한다 성공이 성공을 낳는다. 수학 시험에서 90점 이상 맞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다른 과목에도 자신감이 생긴다. 아니 어떤 일도 잘할 것이라 생각하게 된...
  • 최승환(가오) 조회 1346311.12.21.12:58
    올해초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낚시 좀 다녀보자 했건만.. 이것저것 바쁜 일상에 찌들다 보니 정작 낚시는 못한체 벌써 연말이네요. 쓰레기 주워서 골드웜님에게 받은 스피닝 낚시대는 아직 고이 모셔만 두고 있고 매...
  • 아론의 "가족들과 함께한 경남 창녕 화왕산 등산"
    안녕하십니까? 아론입니다. 지난주 토요일 번개늪에서 꽝맞고..... 애들과 한 약속을 지키려 일요일 화왕산을 올랐습니다. 해발 756.6미터 뭐 높다는 감이라든지 힘들겠네? 이런 생각이 안듭니다. 왜냐? 산을 자주 안...
  • 골드디오 245...정말 구하기 힘드네요.중고로 안올라오는 이유는 그만큼 선주분들이 만족에 만족을 하니 안파는것이겠죠??내년 2월까지 구해보고.. 안구해지면..새걸로 사버려야겠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운데 소중한...
  • 대가들의 상황 대처법 소크라테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자, 제자들이 몰려와 말했다. "스승님, 이게 웬일입니까? 아무런 죄도 짓지 않으셨는데 이렇게 감옥에 갇히시다니요.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
  • 다름이 아니고 집에서 고기집을 하는데 방송국에서 찰영을 나온다고 해서 그날 손님 없을껄 대비해서.... 고기값이랑술값은 대외적으로 얼굴방송에 한번 보여주시면됩니다 조만간 번개아닌번개 칠예정인데 좀도와주실분
  • 돌아오는 주말에는 어디가 잘 나올까요?
    주말이 다가오니 이번 주말은 어디로 갈지 조금씩 고민을 시작해야지요? 고려 사항 1)날씨 일단 토요일은 추워졌다가 일요일에는 약간 풀리는 양상입니다. 서쪽 지역으로는 눈이 올수 있다는 일기 예보가 있습니다. =...